복지와 성장은 동반성장 관계!!(한겨레 2011/8/24)

'낮은 복지' 일본, 청년을 '하류 사회'로 추방

한국과 일본은 다르면서도 의외로 닮은 점이 많다. 특히 1960년대 이래 한국은 국가정책의 두 핵심 축인 경제와 복지에서 일본을 쫓았다. 하지만 이웃나라
경제대국은 더는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저부담·저복지의 일본 복지체제는 오늘날 기능부전에 빠졌고, 경제는 도무지 살아날 줄 모른다. 여기에 새로 집권한 민주당 정부의 복지개혁조차 좌초 일보 직전이다. 일본 복지체제의 변화는 새 복지의 길을 찾는 한국에 적잖은 교훈과 시사점을 준다.

도카시 마시다카(32)는 피끓는 젊은이다. 최근 일본 도쿄의 한 시민단체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그곳에서 노숙자를 위한 상담과 주거 마련 등의 일을 한다. 하지만 몇년 전만 해도 그도 노숙자였다. 이른바 ‘청년 노숙자’ 중 한사람이었다. 노숙자 이전에 그는 ‘프리터족’이었다. 홋카이도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도쿄로 온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편의점 ‘알바’ 외에는 거의 없었다. 도카시는 이 대목에서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다”며 당시를 돌이켰다. 그러나 그마저도 오래 할 수는 없었다. 급기야 노숙자로 전락해 이곳저곳 떠돌다, 지금 소속돼 있는 단체의 도움에 힘입어 자신과 같은 노숙자들을 돕는 일을 하게 됐다. “이 일을 통해 작은 보람을 느낀다”는 도카시는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안다. “노숙자 생활 이래 가족과도 완전히 연을 끊었다”는 그는 다시 가족을 찾을 생각도 없다. 장래 계획은? “없다”는 짧은 답이 돌아왔다.

도카시의 삶과 이력에는 빈곤과 실업, 워킹푸어의 악순환 등으로 고통받는 일본 청년의 고단한 현주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도카시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적잖은 일본의 젊은이들은 자신을 스스로 ‘하류사회’로 밀어넣는다. 하류사회는 ‘삶에 대한 의욕이 극도로 낮은 젊은이들의 세계’를 가리킨다. 보통 프리터와, 때로는 숫제 학교에도 가지 않고 구직도 않는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로 생을 영위한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08년 기준으로 프리터족은 170만명, 니트족은 64만명으로 추산한다. 한때 세계 제2의 경제대국, ‘1억 총중류(중산층)사회’로 불리던 일본이다. 하지만 일본 언론은 수년 전부터 ‘격차사회’란 조어를 만들더니, 이제는 ‘무연(無緣)사회’란 상징어로 격차사회의 극단을 드러내 보인다. 무연사회란 가족, 친척, 고향, 직장, 지역사회 등과의 모든 인연이 끊어짐을 뜻한다. 해마다 홀로 죽는 이들이 3만2천명에 이른다는 사실이 무연사회의 모습이다. 무연사회는 비단 고령의 노인들에 해당되는 게 아니다. 청년의 빈곤화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젊은이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앞서 만난 청년 도카시도 가족과 인연을 끊은 지가 10년이 넘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런 상황은 오랜 경기침체 탓이기도 하지만 사회안전망의 기능 상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과거 일본인들은 고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기만 하면 종신고용과 연공임금, 기업복지의 혜택을 받았다. 웬만한 복지는 기업이 해결했고 가족이 이를 뒷받침하는 구조였다. 1961년 ‘국민개보험, 개연금 시대’가 확립되는 등 정부의 복지시스템은 일찍이 마련됐지만, 저복지·저부담을 기초로 했고, 주로 여성·고령자 등 취약계층에 선별적으로 한정됐다. 일본 복지체제는 곧 ‘낮은 공적 사회지출,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정책, 가족의 과도한 복지부담’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곧 한국 복지체제의 특징이기도 하다.

2009년 8월 중의원 총선 결과, 자민당의 반세기 장기집권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이른바 ‘55년 체제’(자민당에 의한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한 정치 구조)의 종언이다. 어린이수당 도입 등 공약을 통해 집권한 민주당 정부는 새로운 복지패러다임을 제창했다.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발본적’ 사회보장 개혁을 하겠다며, 유럽식 모델에 가까운 보편주의적 복지로의 개혁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민주당 정부는 실제 자신들이 공약한 대로 어린이수당 도입 등 아동복지는 물론, 연금, 의료, 빈곤 등 기존의 생활보장체계의 일대 혁신을 꾀하는 사회보장 전반의 개혁에 나섰다. 하지만 2010년 사회보장 재원 마련을 위한 소비세 인상을 내걸고 치른 참의선 선거에서의 패배와, 이어 올 3월 동일본 대지진이란 큰 암초를 맞아 휘청거리더니, 마침내 지난 8월 초엔 간판 정책인 어린이수당의 철회를 결정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어린이수당의 철회는 민주당 정부의 복지패러다임이 큰 위기를 맞았음을 뜻한다. 오랜 경제침체, 저출산·고령화, 낮은 복지지출 등을 특징으로 하는 일본 복지자본주의의 오늘의 모습은 한국의 가까운 미래일지 모른다.

도쿄/글·사진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제때 해야 할 복지투자 놓치면 경제도 놓친다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

저출산·고령화 방치하다 노동력 감소해 경제 약화

복지 앞세워 집권한 민주당 재원대책 부실해 실패 자초

일본 사회와 복지체제의 변화는 한국에 적잖은 교훈을 준다.

많은 전문가들이 앞다투어 지적하는 일본의 시사점은 저출산·고령화 대책, 사회서비스 확충 등 복지에 대한 투자를 적시에 하지 못했을 경우, 복지도 경제도 다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적절한 복지투자로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 구조를 마련해야 지속가능한 성장과 복지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1980년대 저출산·고령화가 가파르게 이뤄질 때 당시 경제성장도 아주 좋았다. 그때 저출산 및 고령화 등 복지 분야에 투자를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질 못했다. 이것이 일본 실패의 큰 원천이다.”(다케가와 쇼고 도쿄대 교수·사회정책). 다케가와 교수는 “적시에 복지투자를 안 하다 보니, 이후 (경제에) 거품이 생기고, 거품이 생긴 뒤로는 뒤늦게 복지에 투자를 하더라도 아주 비싸게 치러야 했다”고 덧붙였다.

오사와 마리 도쿄대 교수(경제학)도 일본 복지자본주의의 침체 원인 중 하나로 저출산 대책 등 복지투자의 부족을 들었다. “일본은 지금 일하면 일할수록 빈곤해지고, 세금과 사회보장이 되레 빈곤을 조장하는 상황이 됐다. 역사적으로는 1989년 ‘1.57(합계출산율) 쇼크’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거의 아무것도 하질 않았다는 점이 문제였다. 오늘의 일본은 그 결과다.” 오사와 교수의 결론도 지난 시기 적시에 복지투자를 안 한 까닭에 복지도 경제도 다 놓쳤다는 것이다.

일본은 경제 대국 가운데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가장 빠르게 이뤄진 나라다. 1950~60년대 3.65에 이르던 합계출산율(15~49살 출산 가능 여성이 일생 동안 낳을 수 있는 자녀 수)은 70년대 2.0대로 급락했다, 급기야 80~90년대에 이르러 1.75~1.54대로 떨어졌다. 2010년 현재 이 비율은 1.4다. 고령화의 속도도 가팔라, 일본인들의 평균연령은 1970년 31살에서 97년 40살을 거쳐 2020년엔 46살로 예측된다. 현재 1억2700만명의 인구는 40년 뒤엔 9000만명 이하로 떨어질 전망이다. 인구감소는 곧 노동력 감소로 이어져 일본의 노동력은 이대로라면 2050년에는 1950년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5000만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노동력이 이처럼 역 유(U)자형을 보인 나라는 선진국 어디에도 없다. 이를 메워줄 대체인력인 여성, 노인, 외국인 어느 것 하나 여의치 못하다. 일본 문제의 핵심은 복지포퓰리즘이 아니라 열악한 복지와 보수적 문화다.”(이정우 경북대 교수) “일본의 경제는 내수 중심인데, 문제는 내수가 계속 위축돼 경제가 안 돌아간다는 것이다. 핵심적 이유 중 하나가 복지문제다. 복지가 안 돼 있기 때문에 심지어 (정부가) 내수를 촉진하기 위해 돈을 풀어도 (시민들이) 안 쓰는 상황이다.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돈을 안 쓰니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신광영 중앙대 교수)

특히 일본의 전문가들은 ‘한국이 일본과 같은 상황에 빠지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사회안전망을 튼실하게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하며, 특히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사회적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을 권고했다. “한국 사회도 저출산 고령화 등 복지문제가 심각하다. 이대로 가다간 큰 낭패를 볼 것이다. 복지를 통해 출산율을 높이고 내수를 돌게 해야 한다.”(다케가와 교수) “한국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은 싼(저부담·저복지) 복지국가는 결국 사적 지출이 늘어나, 사회적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강하고 깊은 국내 시장을 만들지 못한 원인은 올바른 세금정책, 올바른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복지와 성장은 교환관계가 아니다. 동반성장이어야 한다.”(오사와 교수)

일본이 우리에게 주는 또다른 교훈은 복지를 위한 철저하고 정교한 재원 대책 마련이다. 일본의 복지시스템은 오랜 기간 경제성장과 기업에 의해 이뤄졌다. 복지 분야에 대한 투자가 거의 없으니 별도의 재원 대책 고민 또한 깊지 못했고, 그래도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90년대 말 이래 비정규직이 늘고, 빈곤과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저부담·저복지를 기조로 해온 자민당 정부가 끌고 온 기존 복지시스템은 ‘기능부전’에 빠졌고, 급기야 자민당은 어린이수당 등 보편적 복지 정책을 앞세운 민주당에 정권을 내놓아야 했다.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란 구호가 상징하듯 민주당은 복지 공약을 앞세우며 집권에는 성공했으나 문제는 공약 이행과 이를 위한 재원이었다. 민주당은 앞서 선거 과정에서 어린이수당 도입, 최저보장연금 실시 등 양육·장애인·고용·연금·의료 분야에서 숱한 대국민 약속을 했다. 그러면서도 “정권을 잡으면 재원은 얼마든지 조달가능하다”(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대표)며 재원 대책에 대해서는 매우 안이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민주당은 매니페스토(예산과 일정을 갖춘 선거공약)를 실현할 구체적 방법으로 증세 없는 ‘낭비사업의 재편’을 전면에 내걸었다. 일본인들은 부담 없는 복지혜택에 솔깃했다.

하지만 집권 뒤 민주당의 낭비사업 재편 결과는 초라했다. 기대만큼의 ‘돈’을 확보할 수 없었다. 이런 배경에는 관료사회의 반발과 정치적 리더십의 부족도 한몫했다. 하지만 재정상황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부족한 점이 더 컸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민주당은 집권과 함께 엄청난 재정적자와 1000조엔에 가까운 국가부채를 원천적으로 떠안아야 했다. 그 원인은 “자민당 정권이 실상 불경기 타개를 명목으로 도로, 댐, 교량 건설의 국가재정을 마구잡이로 남발하는 이른바 ‘토건포퓰리즘’ 정책과 감세 정책을 펼쳐 온 때문”(이정우 경북대 교수)이었지만, 민주당의 매니페스토는 이런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이뤄졌다. 급기야 민주당 정부는 ‘증세’ 카드를 들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소비세 인상을 국민들에게 호소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한 패배로 나타났고, 민주당 스스로 정국을 끌어갈 수 없는 정치적 상황으로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대지진까지 발생해 엄청난 피해복구 예산을 확보해야 했다. 지난 7월 간 나오토 총리가 정책공약이 잘못됐다고 사과하고 8월에는 어린이수당을 철회하게 된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이런 재정적·정치적 상황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재정상황과 한국의 그것은 다르기에 등치시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을 낳을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은 재정건전성(국내총생산(GDP) 대비 3.3%)과 국가부채(국내총생산 대비 26.8%) 등에서 일본에 비해서는 아직 양호한 편이다.(재정건전성을 의미하는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수지 흑자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3.5%이며, 오이시디 평균 정부부채는 2008년 기준 국내총생산 대비 26.8%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은 복지지출이 선진국과 비교해 너무나 낮은데다, 그 확대와 새로운 설계가 시급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일본의 교훈을 간과할 수 없다. 치밀한 재원 방안을 통해 실현가능하면서 지속가능한 정책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끝으로 일본의 재정적자 원인을 두고 복지포퓰리즘 운운하며 복지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국내 일각의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이는 ‘번지수가 한참 틀렸다’. “민주당이 집권한 것은 최근의 일이며,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는 과잉복지가 아니라, 거꾸로 취약한 복지”(이정우 교수) 때문이다. 실제, 일본의 재정적자 비율(국내총생산 대비 정부채무 비율)은 1999년에 100%를 웃돌았고, 일본 민주당이 보편적 복지를 말하기 이전인 2008년도에 이미 180%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by 깨인녀석 | 2011/08/25 00:35 | 새벽이슬... | 트랙백 | 덧글(0)

마태복음 27장 "죄를 외면한 빌라도"

마태복음 27장에는 유다의 자살, 빌라도의 신문, 군인들의 조롱,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후 무덤에 묻히시는 일까지 예수님의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장면이 등장한다. 오늘은 이 중에서 빌라도의 행동이 마음에 와 닿았다.

빌라도는 자기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과 또 민란이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고 말하였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책임이 없으니 여러분이 알아서 하시오."(24절)

이 구절을 통해서 빌라도는 유대인 대제사장과 장로들, 그리고 그들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이 두려워서 예수님이 죄가 없음을 알고도(23절) 예수님 대신 바라바라고 하는 죄수를 놓아주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빌라도는 이 죄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자신의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넘긴다. 그리고 19절에서 언급된 빌라도의 아내의 말을 통해서 빌라도의 아내를 비롯한 뭇 사람들은 예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직감하고 있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결국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한 아내의 말과 자신의 양심 모두를 거부하고 예수님에 대한 사형 집행을 허가한 것인데, 이 모습을 통해서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을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과거 사울왕과 같은 왕들도 사람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있었다는 것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떤 이유로든지 간에 양심의 소리를 거부하고 죄악된 일을 외면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경우 대개 어떤 변명거리를 마련하게 된다. 이 모습은 대표적으로 작년 이맘때쯤 벌어졌던 용산참사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종종 마주치게 되는 노숙자들의 모습에서 나타난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죄)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있는 측면이 크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죄가 없는 것처럼 살고 있을 때가 많았다. 일상생활이 바쁘고, 그 부조리에 대해 내가 당장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빌라도와 같이 죄를 외면하였고 나를 방어하기 위해 변명하였다.

참 어려운 문제다. 과거에도 피하기 어려운 문제였겠지만 지금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보가 더욱 투명하게, 널리 공개된다는 점은 죄악된 일이 덜 발생하는 중요한 요인이지만, 다른 한 편으론 세계 곳곳의 죄악된 일들을 쉽게 접하기 때문에 오히려 죄를 외면하는 일이 더 자주 발생하게 되는 것 같다.

결국 나의 일상생활이 미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죄를 외면하지 않고, 범위를 넘어서는 곳에서 벌어지는 죄악된 일들에 대해서는 기도하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내가 이것을 잘 할 수 있을까? 분명 지금보다는 더 큰 용기,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다.

by 깨인녀석 | 2010/01/28 12:09 | 말씀 묵상!! | 트랙백 | 덧글(0)

마태복음 20장 "하나님 나라의 일"

예수님께서는 포도원의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 비유를 처음 보았을 때, 이 비유 또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관점에서 처음에 와서 일한 사람들이 불만을 제기한 것(12절)은 너무나 당연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불만에 대해 주인은 그것이 자신의 뜻이며, 이것은 결코 부당한 대우가 아님을 덧붙인다(13-14절).

여기서 주인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 나라의 일(work)"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일이란 일한 만큼의 보상을 받는 것 이상으로 일 자체에서 얻는 기쁨과 복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남들보다 오랜 시간 교회를 다니며 공동체를 섬기는 것, 대학시절 자신의 시간을 쪼개 선교단체에 헌신하는 것,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기억하며 선교활동으로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 등의 여러가지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한다. 오늘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이러한 일에 대해 먼저 온 일꾼들처럼 더 많은 보상을 받을 것을 기대할 필요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이미 우리는 그 일들을 수행하며 하나님께 많은 기쁨과 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통해 얻는 위로와 기쁨, 주님과의 인격적 교제를 통한 마음의 평안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행한 자를 결코 잊지 않으실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일의 원리를 세상의 일에도 적용시키고 싶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일이지만 주어지는 보상이 적어서 그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남들 못지 않게 즐기고 싶고,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받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 물질적인 보상보다 하나님 나라에 쌓아둘 상급에 더 집착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일을 함으로써 얻어지는 돈보다 일을 통해 실현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보고 싶다. 이러한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부자 청년의 시험(물질을 내려 놓는 것)을 뛰어넘을 수 있으며 구별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말씀에서는 이어서 예수님 다음가는 권세를 얻고 싶어하는 세베대의 아들들(야고보, 요한)의 어머니의 요청이 언급된다(20-21절). 이 요청은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하며, 24절 말씀은 다른 제자들 또한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제자들에게 필요한 마음이 바로 앞서 언급하였던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며 얻어지는 기쁨과 복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과 "예수님과의 진실한 교제"라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큰 보상을 이미 얻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원하는 영광은 예수님께서 두 소경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의 눈을 고쳐주신 것처럼(31-34절)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시고 주어진 고난을 온전하게 감당하셨다. 17-1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세 번째로 예고하시는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그 일을 함으로써 얻을 돈이나 권력을 생각하지 않으셨다. 비록 두렵고 떨리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이루실 일과 부활을 통해 받으실 영광을 바라보셨을 것이다. 권력을 탐했던 제자들은 이후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하게 된다. 오늘 나의 모습이 제자들 혹은 부자청년에 더 가까울 지라도 마음을 새롭게 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여 온전히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by 깨인녀석 | 2010/01/26 11:58 | 말씀 묵상!!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